1. 프롤로그
1라운드 전승에 빛나는 LIG 손해보험과 1라운드처럼 했다가는 올핸 진짜 챔피언 결정전도 힘들어보이는 현대캐피탈이 만났다.
LIG는 지난 1라운드의 싹쓸이 행진동안 5세트를 단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기세등등한 상태. 피라타/김요한의 좌우 쌍포와 임동규의 안정감 있는 마당쇠 역할에 마찬가지로 상무에서 복귀한 김철홍의 쏠쏠한 활약덕에 고공행진을 할 수 있었다.
반면, 현대캐피탈은 성장을 바라보고 영입했던 앤더슨이 성장은 커녕 퇴화 지경에 이르렀으며.. 믿었던 중앙 속공도 먼지털이 여자배구를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 파이팅 넘치던 임시형은 부상 때문에 리시브 가담밖에 할 수 없고, 정작 믿을건 박철우라 리그 초반부터 박철우 몰빵질이 연속되는데...
2. 초반은 LIG의 흐름
오정록과 앤더슨의 허접한 리시브가 작렬하면서(인간적으로 두어개빼면 다 제대로 받아냈어야 할 서브였다) 공격은 자연히 박철우에게 집중되었고.. 요거이 간간히 뒤에서 걷어내지면서 힘든 수순을 밟아갔다.
박철우가 언제부턴가 직선 쪽보다는 크로스 혹은 반크로스에 집착했는데, 오늘 경기에서도 크게 달라지는 경향은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꽂히는 공격 중 90%는 반크로스/크로스였으니까(하도 말들이 많길래 오늘은 직접 세어가면서 봤다).. 이게 그래도 다른 팀들과의 경기에선 먹힌다. 크로스 쪽에 치중하는 이유가 그쪽을 지키고 있는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수비가 약한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오늘도 피라타, 황동일 등이 크로스쪽에 있다면 어김없이 공은 그쪽으로 갔다). 하지만 삼성전에는 이게 쉽게 통하진 않을 것이다.
반면, 피라타가 주된 점유율을 찍으면서 김요한에게 배분되는 LIG의 승리공식은 1세트에도 여전했다.
특히, 황동일이 피라타에게 쏴주는 퀵오픈은 "작년 LIG의 그 황동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괄목상대한게 눈에 드러날 정도였다. 일단 호흡도 상당히 잘 맞았고, 그 빠르기에 있어서 국내 그 어떤 세터-외국인 선수 조합보다도 깔끔하게 꽂히는데 혼자서 직관하는 내 입에서 감탄사가 쪽팔리게도 수차례 터져나왔다.
오히려 피라타와 오늘 호흡이 잘 맞다보니 김요한을 덜 쓰게되었는데.. 막판 피라타가 몰렸던 점을 생각했을 때 김요한을 더 썼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1세트는 세트 후반 현대의 블로킹 벽이 살아나면서 그 일방적이었던 경기가 듀스까지 흘러가게 되는데.. 현대는 신인 한상길의 원포인트 서브 에이스로 분위기 잡을 수 있는 찬스가 왔지만.. 그 흐름을 살리지 못하고 결국 1세트를 내주게된다.
2세트에서도 LIG가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블로킹도 1세트 보단 덜 당했는데.. 문제는 현대의 중앙에 있었다.. 현대가 윤봉우/하경민의 중앙 속공이 살아나면서(1세트엔 달랑 1개 시도했는데 2세트에 5개 시도) LIG의 블로킹 벽을 교란하는 효과를 얻어냈고.. 이는 곧 송인석과 앤더슨의 세트 후반 적절한 활약으로 이어졌다.
앤더슨은 1세트 때 단 1득점과 엄청난 리시브 미스로 오늘의 워스트 플레이어 1순위 후보였는데, 2세트 후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중앙에서 백어택, 시간차를 작렬시키는 등 흐름을 가져오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그렇다고 앤더슨이 오늘 잘했단 얘긴 아니다. 전위의 앤더슨은 공격/블로킹 둘 다 안된다)
3. 2세트 중반부터 현대 흐름
직전쪽을 현대의 사이드 블로커들이 철저히 막아주기 시작하고(송인석/박철우), 앤더슨이 서브로 그나마 밥값을 해나가는 와중부터 흐름은 현대에 넘어오기 시작한다.
물론, 2세트에서 갑자기 늘어난 속공 점유율은 LIG 블로커들을 교란시키면서 궁극적으로 송인석이 살아난 주된 원인.
2세트 막판도 접전이었지만, 윤봉우가 기가막힌 서브 에이스를 따내면서 겨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다.
2세트부터 전반적으로 리시브가 안정된 부분도 있고(현대나 LIG, 대한항공 같은 팀에 있어서 그렇게 완벽에 가까운 리시브는 필요도 없다. 그저 50%만 넘겨주면 황송할따름. 현대는 그게 잘 안되서 문제지만..)
권영민의 볼 배분이 다행히 1세트 이후로 정신줄을 안놓는 바람에 3,4세트도 쉽게 가져올 수 있었다.
그 바탕에는 뭐니뭐니해도 레프트의 분전이 있었는데.. 앤더슨은 오늘도 여전히 한심한 수준이지만(외국인 선수라는 놈의 공격성공률이 38%가 뭐냐.. 게다가 오픈은 0%.... 도대체 외국인 선수 데려오는 이유가 뭔데 오픈 0%가 뭔가...) 송인석이 펄펄 날면서 68%라는 커리어 하이급 성공률을 찍었다.
또한, 리시브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보였는데... 지난 시즌 완벽한 버로우였던걸 생각한다면 지난 우리캐피탈 전에 이은 오늘의 활약은 쌍수를 들어 반길만한 것..
또 3세트부터 임동규가 수비 쪽에서 불안감을 몇번 보여주고 허리 쪽에 통증을 느끼면서 교체되었는데(엄창섭, 이경수, 이상래가 번갈아가며 출장) 리시브가 불안해지는건 둘째치고 수비쪽에서 조직력이 다소 흐트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임동규가 없다보니.. 자연스레 공격은 피라타에게 집중되었으며(황동일의 게임 운영이 경기 초반에 비해 많이 아쉬운 대목) 피라타의 범실까지 이어지면서...
본인으로 하여금 왕년의 레안드로 생각까지 나게하는 모드로 돌변하였다.
황동일이 피라타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모습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김요한이라는 걸출한 공격수가 있는 만큼 억지로라도 볼 분배를 유동적으로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박기원 감독도 작전 타임을 제법 빠른 타이밍에 쓰는 바람에 세트 후반부에 흐름을 끊는데 실패했으며(3세트는 거의 포기한듯한 느낌도 받았다)
황동일이 헤맬 때 직접 싸인을 내면서 김요한 쪽을 더 썼더라면 좋았을 것도 같다.
4. 결국....
LIG는 1세트에서의 그 분위기를 다 잡지 못하고, 2~4세트를 내리 내주면서 패하고 만다. 더불어 연승행진도 마감하게되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LIG의 연승이 저지된 것 보다는.. 강력한 서브가 경기 중후반을 넘어갈수록 줄어든다는 데에 있다.
현대라는 팀은 서브 리시브가 좋은 팀이 원래 아니지만 50% 밑으로만 낮추면 공격 패턴이 뻔해지는 팀이기에 상대하기가 굉장히 수월해진다. 따라서, LIG의 무지막지한 서브라면 승부를 걸어볼만 했는데.
하현용은 오히려 예전엔 강타로 좋은 서브를 많이 구사하더니 요즘은 아예 목적타로 돌아섰고, 김요한의 서브도 그 날카로운 맛이 다른 경기만 못했다.
현대캐피탈 입장에서는 이 경기를 치고 완전한 상승세로 접어들었으며, 이번 일요일에 펼쳐질 삼성과의 경기가 리그 중후반까지의 흐름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일전이 될 것이다.
오늘 같은 볼 분배가 긍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경기를 펼치면서 삼성을 잡아낸다면 이 상승세를 3라운드까지도 이어갈 수 있을거라고 본다.
다만, 이선규의 계속된 부진(점프력 자체가 떨어져서 속공 호흡도 안맞고.. 몸이 안만들어졌는지 의심케 만드는 풋워크 덕분에 블로킹도 전혀 살지 못하고있다)은 삼성 전에서 더욱 크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또한, 오늘 쏠쏠한 재미를 본 직선쪽의 사이드 블로커들의 손맛은 결코 일회성이 아닌 현대캐피탈이 쭉 끌고 나가야 할 문제이다. 직선쪽을 확실히 틀어막고(레안드로도 결국 직선쪽의 압박을 못이겨 크로스로 일관하다가 범실이 미친듯이 늘어났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크로스쪽 코스를 잡아낸다면(뭐 오정록은 지키고 서있는 그 자리로 공이 날아와도 디그를 잘 못하긴 하더라) 승산이 있다.
허나, 블로킹 벽 좌우로 공이 훨훨 날아다니게 열어둔다면.. 가빈 슈미트에게 또 맹폭을 당하며 험한 꼴을 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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