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삼성화재의 새로운 외국인 선수 그로저가 첫 선을 보였다.
한국에 온지 이제 4일째였고, 시차적응, 공인구 적응, 삼성화재라는 팀에 적응 등 온갖 숙제가 넘쳐나던 상황에서 굳이 현대캐피탈 전에 내보낸 이유가 있을터,
그 이유로는
첫째, 현대캐피탈이 지난 대한항공전에서 무기력하게 털렸던 점과 삼성화재에게 꾸준히 약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로저의 데뷔 무대로 그리 난이도가 높지 않을 것으로 판단
둘째, 개막 후 2연패, 무승점의 쪽이란 쪽은 다 팔고 외국인 선수 없으면 그저 허접한 팀이라는 오명을 쓰고 싶지는 않기에 초강수를 둠
셋째, 실전만한 연습과 적응훈련이 없다고 판단함
정도로 볼 수 있겠다.
결과야 어제 경기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처참하게 발렸고, 특히 3세트는 여유 있는 점수차로 앞서고 있다가 세트가 진행될수록 야금야금 따라잡히더니 결국 듀스 끝에 털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원래 삼성이 현대를 털어먹던 경기 진행 양상의 전형적인 예였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차츰 나아지겠지, 나아져서 레오에 필적하는 기량과 시몬에 필적하는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해주겠지..하는 기대를 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허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럴 공산은 적다는게 내 생각이다.
우선,
그로저는 절대 몰빵형 스타일이 아니다. 한국 나이로 서른하나인가, 서른 둘인데.. 20대 초반에 한국에 건너와서 3년 동안 리그를 확실하게 접수했던 레오에 비해 10살이나 많은 상태로 한국에 왔단 얘기다.
체력적으로 이미 자기만의 페이스가 확실하게 굳어져 있는 선수를 시즌이 시작된 후에 영입해서 몰빵 머신으로 만들수도 없거니와 그로저가 어차피 1년 뛰자고 그럴리도 없다.
그런데 삼성화재는 몰빵형 외국인이 필요하다. 이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어제 첫 경기부터 47%의 공격 점유율을 몰아주지 않나.
그나마 이건 약과라는걸 그로저가 얼른 꺠달아야 할텐데...
그리고, 그로저는 절대 타점 높은 공격을 지속적으로 해낼 수 있는 외국인 선수가 아니다. 공인 타점이 365cm라고는 하는데 그거야 최전성기 때 제대로 메이드 되었던 공을 때렸을 경우의 타점이고 어제 경기봤듯이 타점은 다른 외국인 선수에 비해 쳐졌으면 쳐졌지 결코 낫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게 몸이 안올라와서 일까? 천만의 말씀.
그로저는 지금 유러피안 챔피언쉽이라는 국가대항전을 바로 치르고 온 몸이다. 게다가 시즌 개막에 맞춰 몸도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고... 변수라면 시차적응이 덜 된것으로 인해 컨디션이 최악에 가까웠을 거라는 정도인데...
유럽 댕겨와본 사람은 알겠지만 개뿔 이코노미 클래스 타고 한국에 컴백해도 한 이틀 저녁 퍼질러 자면 금방 적응된다. 하물며 탑 클래스의 운동선수가... 최소한 비즈니스 클래스는 타고 왔을터인데 입국한지 4일 째 되는 날 시차적응이 안됐다고 365짜리 타점이 265가 되었겠는가? 그건 아니라는거다.
분명 악영향을 줬겠지만 그게 크리티컬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지.
그래서 난 생각한다. 그로저가 라운드를 거듭되는 상황에서도 타점 깡패로 50% 이상의 점유율을 먹으면서 레오나 가빈처럼 다 때려부수지는 못할거라고.
그런데, 어제 서브 하나만큼은 진퉁이었다. 미카사볼이 아닌 스타볼 같은 공 쓰면서도 그런 서브를 꽂아대는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나아질 여지가 분명 있다. 아마 이것만큼은 확실히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파괴력이 커질 것이다. 다만, 서브라는 것이 흐름과 멘탈을 분명 타는 것인데.. 흥이 나는 상황에서 서브를 때린다면 세트 당 1개 정도의 엄청난 괴력을 뿜을 선수지만
몰빵에 안풀리는 경기속에서 서브를 때리다보면 성공률 마저 저하될 터, 강하지만 그리 성공률이 높지는 못한 서브를 보게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든다.
스피드 배구라는 화두 속에서 최고급으로 분류되던 선수가 스피드라는 본인의 장점을 제껴버린 채 느릿느릿하게 건너오는 아리랑볼 토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환장할 노릇일텐데 어디 두고볼 노릇이다.
다행히 다음 경기는 일주일 후에나 우리카드전이고... 우카가 요즘 하도 삽질을 해대어서 삼성화재가 어제 정도의 경기력만 보여도 우카한테 질리는 없을 것 같긴하다.
아무리 그로저가 못했기로서니 누가 돈 걸라면 우카에 걸겠나?
아 그건 그렇고...
그로저를 레프트에 리시브 면제되는 옵션으로 쓰고, 김명진을 라이트에 세우자는 얘길 하는 사람이 보이던데.. 이건 겉만 알고 속은 모르는 얘기다.
겉으로 보기에 그나마 그로저 오기 전까지 공격다운 공격을 하는 공격수라고는 김명진이 유일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기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십분 이해되고 공감은 된다마는
이 경우에 삼성화재는 류윤식/다른레프트 1명/곽동혁까지 3인 리시브를 세웠었다. 울며 겨자먹기였지만 이러면서 센터 공격수 1명까지 4인을 공격으로 세울 수 있었고 울며 겨자먹기로 공격이 분산되면서 대한항공전이나 OK저축은행전에서 그럭저럭 괜찮은(물론 세트스코어만 보면 털렸지만) 모습을 보였다. 이 때 레프트 두명과 리베로 한명이 나름 나눠서 수비를 하고 리시브를 하니... 사기적인 수준은 아니어도 봐줄만큼은 되었단 얘기다.
허나 그로저를 레프트에 세운다면 2인 리시브(어제도 2인이었지. 류윤식과 곽동혁)로 회귀하면서 동시에 라이트에 세울 김명진도 수비에 있어서 별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된다. 레오 땐 어땠냐고? 무늬만 레프트여도 설마 레오가 라이트로 오래뛴 그로저 만큼 기본적인 리시브나 수비도 못했을까.
그리고 그로저는 주구장창 라이트로 오래도록 뛰었기 때문에(2000년대 초반에 잠시 레프트 경험도 있다고 함) 이제와서 왼쪽 공격을 주로 시킨다면 안그래도 적응안되는 상황에서 엄청 난이도가 높은 숙제 하나를 더 던져주는 꼴이라 이도저도 아닐 확률이 더 크다고 본다.
다행스럽게도 삼성 입장에서는 OK, 대한항공 두팀한테 일찌감치 털리면서 예방주사를 맞았고, 좀 기분 더럽기야 하겠지만 현캐한테 털리면서 남은 1라운드 대진이라고는 우카/KB/한전인데 이 3팀은 누가 더 못하냐를 내기 중인 팀들이기 때문에 설마하니 삼성이 질 것 같진 않다.
톡까놓고 얘기하면 그로저 없이 OK와 붙었던 그 경기력만 있어도 저 3팀은 이길 것이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삼성이 저 3팀 잡고 만족하자고 그로저한테 돈질하진 않았을거고 목표는 우승인데, 여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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